크지않은 키이지만 파워풀한 가창력을 가진 가수 유미리는 1986년 MBC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가수입니다.
어린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 가수 유미리는 명문인 보스턴의 버클리음악대학교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깜찍한 외모와 스마트한 모습의 버클리 음대생이던 85년에는 미국에서 교포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음악제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이때부터 가수 유미리의 스타성이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후 강변가요제에 참가하게 된 유미리는 히트곡이 된 "젊음의 노트"로 미국 대표로 출전하며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유미리
본명 이미애
1965년 8월 19일
경기도
보스턴 버클리대학교 실용음악학과
전미주교포학샹 가요제 1등
MBC강변가요제 대상
참가곡 젊음의 노트
이후 여러가요제 등에서 스타로서의 자리매김을 확고히 하였고 가수 유미리의 노래 젊음의 노트는 여러 스포츠에서 응원의 노래로 불리우며 더욱 더 대중들의 스타로 발돋움 하였습니다.
젊음의 노트가 엄청난 히트가 되며 가수 유미리의 장미빛 인생이 시작되었지만 젊음의 노트의 후속곡들의 부진으로 인하여 과거의 명성을 이어가는것은 약간 어려움이 있지않았나 생각됩니다.
젊음의 노트 이후 여러스터일의 노래를 발표하였지만 젊음의 노트에 버금가는 노래는 나오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며 잊혀지는 가수가 되는듯 했지만 지난 2009년 트로트 스타일의 곡 "지못미"를 발표하며 스타일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잊혀진 가수로 지내는줄 알았던 가수 유미리가 노래하는 프로그램에 나와 또 한번 이목을 끌었습니다. 과거의 명성을 확인하려는듯 17킬로그램을 감량하여 달라진 모습으로 티비앞에 선 유미리는 노래하기 위해여 다이어트를 했음을 밝히며 그동안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는듯 눈물을 훔쳤습니다.
미국시민권자였던 유미리는 가수를 하고싶어 시민권을 포기한 후 돌아온 한국에서 두번의 사기로 빚더미에 올랐던 과거가 있습니다.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기에 남편과 아이는 없습니다.
당대 최고의 곡이었던 "젊음의 노트"로 다시 또 한번의 가창력을 선보인 가수 유미리님 아팠던 과거를 잊고 밝고 환한 앞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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