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쿤두스 썸네일형 리스트형 폼페이 최후의 날 폼페이가 폭발직후에도 폼페이에서 값진보물을 파내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벽면에 남긴 낙서로 알수있다. 18세기의 유럽 또한 사라진 도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을 발굴하려는 열정에 사로잡혔다. 1594년 헤르쿨라네움의 폐허가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나폴리에 부왕을 파견해서 남부 이탈리아를 지배했다. 오스트리아의 부왕들은 구덩이와 긴 터널들을 파서 조각상을 약탈한 뒤 빈의 궁전으로 빼돌렸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조금도 망설이지않고 벽화로 장식된 벽을 허물곤 했다. 야만스러운 약탈과 도굴행위를 꾸짖고 나선 사람은 교황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양시칠리아 왕궁의 왕이자 스페인왕인 카를로스3세가 측량사 로코 조아키노 대 알쿠비에레를 스페인에서 끌어들여 값진 조각상과 보물을 스페인 궁정으로 나.. 더보기 이전 1 다음